한 가지 일에 정진하게! - 김채옥 한국현장과학교육학회 창립회장님
정보위원회 | 2021.03.25 | 조회수: 43


한 가지 일에 정진하게
!

 

 

김 채 옥理博 한양대 명예교수, 전 한국물리학회 회장

전 한국현장과학교육학회 창립회장

 

  1960년 사월을 맞이하여 민주화의 열기로 승화된 학생혁명의 여파로 인하여 우리사회는 혼란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해가 바뀌자 분출된 민주화의 열기는 그 도를 넘어 우리사회가 마치 학생공화국이라도 된 것처럼, 학생들이 경찰서를 인수한다느니 남북학생 회담이 열린다느니 하는 뜬금없는 소문으로 그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다. 이런 와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자가 되어 우리나라의 과학발전에 초석을 쌓고자 했던 청운의 꿈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공허감으로 방황이 시작되었다.

  자신에 대한 실망과 원망으로 맥없이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신문을 뒤적이다가 통신강의록이라는 독학광고를 보았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면 보통고시를 볼 수 있고, 보통고시에 합격하면 6급 공무원이 될 수 있으며, 공무원을 하면서 꿈에 그리던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기소침해 있던 나는 마치 과학자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 시골에 계속 머물러서는 공무원이 된다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벌이가 급선무였다.그래서 학교 소사(지금의 급사) 자리라도 구해볼 욕심으로, 어느새 내 발걸음은 집안 어른이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는 초등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교장선생님께 집안형편과 앞으로 계획을 진지하게 설명드렸다. 꿈을 펼치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먼저 공무원시험에 합격해야 한다고 하고, 이를 위해 학교의 소사 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런데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천둥번개 치는 노여운 목소리가 교장실의 적막을 한 순간에 깨뜨렸다. 나는 혼비백산하여 걸상 밑이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교장선생님은 소사라는 일이 얼마나 하찮은 일인데 사내대장부로서 그런 정도밖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느냐고 호되게 나무라셨다. 한참 후에 교장선생님은 목소리를 여러 옥타브 내리셨다.

  “내가 평상시에 자네를 큰 그릇으로 보았네. 그런데 오늘 자네의 말을 듣고서 한편으로는 실망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가 나서 본의 아니게 언성을 높였네. 내 생각으로 자네는 누구보다 영특하니 타의 모범이 되는 지도자가 될 걸세. 나를 믿고 노력을 경주하게나. 고향을 떠나 있는 힘을 다해 한 가지 일에 정진하게. 틀림없이 성공할거야.”

  미소를 머금으시고 책을 한 권 주시면서 읽어보라고 하였는데, 그 책의 요지는 현대는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이다. 고도의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지구촌의 시대가 도래되었다. 부단히 배우지 않으면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패배자로 전락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교육의 정신과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 후 몇 달 뒤에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사회변화의 물결 따라 서울로 향한 마음을 더 이상 억누를 수가 없었다.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서울역에 도착했는데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서울생활은 산전수전의 연속이었지만, 힘들 때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뇌리를 스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한 가지 일에 정진하게. 자넨 틀림없이 성공할거야.”

  교장선생님이 살아 계시다면 과학자로서 이 사회에 소임을 다했다고 말씀해주실 것으로 생각되는 지금, 서재에서 차 한 잔 들며 젊은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내 인생을 이끌어 주신 선생님이 늘 생각난다. 잊지 못할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봐도 걸어가던 길 앞에 있네.”

  도산 12곡 가운데 한 구절이 생각난다. 참된 행복은 쓴 음식을 먹고, 고통의 물을 마신 후에 찾아오는 것 같다. 우리 현장과학 교육학회 회원들께서도 같은 생각이 아닐까 한다.